원코스 경기도007 수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한민국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1 Course Gyeonggi-do007 UNESCO World Heritage in Suwon The Hitchhiker's Guide to Korean Peninsula)
ebook ∣ 원코스 경기도(1 Course GyeongGi-Do)
By 명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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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코스 경기도(1 Course Gyeonggi-do) 수원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in Suwon) 투어를 안내해 드릴 조명화 편집장입니다! 수원은 조선의 22대 왕 정조(正祖)가 자신의 아버지 장조(莊祖)를 모신 융릉(隆陵)을 시작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에 등재된 수원화성(水原華城)(사적 제3호)과 화성행궁(華城行宮)(사적 제478호)를 세운 '정조(正祖)의 도시'입니다. 정조(正祖)는 단순히 제사 때 잠시 들러가는 수준을 넘어서 재위 기간 중 무려 13번이나 수원을 방문했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란 국가적인 행사까지 이곳 수원의 화성행궁(華城行宮) 봉수당(奉壽堂)에서 치뤘을 정도로 수원이란 도시 자체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죠! 심지어 자신 또한 융릉(隆陵)과 지척인 건릉(健陵)에 잠들었으니... 수원 곳곳에 정조(正祖)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이는 현재까지 원대황교(元大皇橋)의 전설에서 확인할 수 있답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원코스 경기도(1 Course Gyeonggi-do)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B융건릉(隆健陵)(사적 제206호) : 융릉(隆陵)은 '사도세자'로 잘 알려진 장조(莊祖)와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건릉(健陵)은 장조의 아들이자 조선 22대 왕 정조(正祖)와 그의 아내 효의왕후(孝懿王后)를 모신 릉(陵)으로 현재 경기도 수원에 있습니다. 융릉(隆陵)과 건릉(健陵) 모두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합장릉(合葬陵)입니다. 장조(莊祖)는 살아서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왕릉(王陵)보다 격이 낮은 수은묘(垂恩墓)에 안치되었으나, 그의 아들 정조(正祖)가 영우원(永祐園), 현륭원(顯隆園)으로 높혔고 고종이 융릉(隆陵)으로 다시 한번 높힘으로써 조선왕릉(朝鮮王陵)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3차에 걸쳐 격을 높힌 흔적은 2개의 표석 - 조선국 표석(조선국 사도장헌세자현륭원)과 황제국 표석(대한 장조의황제 융릉 헌경의황후 부좌)이 있는 비각(碑閣)에서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융건릉(隆健陵) 원대황교(元大皇橋) : 흥미로운 것은 원대황교(元大皇橋)는 본디 금천교(禁川橋)가 아니였다는 것이죠! 1795년 을묘원행 당시 놓은 돌다리 대황교(大皇橋)가 1970년 수원 공군 비행장 신설로 인해 묻힐 위기에 처하자 동네에서 쫓겨 나게 된 마을 주민들이 다리의 일부나마 융릉(隆陵)으로 옮겨 놓았는데요, 이것이 현재의 원대황교(元大皇橋)랍니다. 실제로 정조가 건넜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물론 주민들의 힘으로 보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융릉(隆陵)에서 가장 값진 유물은 원대황교(元大皇橋)가 아닐 수 없겠네요!화성행궁(華城行宮)(사적 제478호) : 수원화성(水原華城)은 단순한 성(城)을 넘어, 설계부터 완공까지 정조가 심혈을 기울여 빚은 '신도시'로 재위 시설 13번이나 방문했을 정도로 실질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높습니다. 화성행궁(華城行宮) 또한 임금이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거처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으며, 최초 건설시 576칸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행궁(行宮)'이기도 하지요. 정조 본인만 자주 방문한 것을 넘어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란 국가적인 행사까지 이곳 수원의 화성행궁(華城行宮) 봉수당(奉壽堂)에서 치뤘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습니다. 임금이 머무르지 않을 때에도 수원 부사, 유수 등이 머물르며 관아로 활용한 '수원의 정치적 중심지'로 기능하였습니다. 수원화성(水原華城)(사적 제3호)의 3가지 비밀 : 첫째, 1794년부터 1796년까지 불과 3년 만에 완공되었다?! 면적 371,145 제곱미터에 달하는 5,744m의 성곽이 30년이 아니라, 3년만에 완공된 것은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죠! 그 유명한 '정약용의 거중기'를 비롯해 실학의 과학, 건축 기술이 대거 활용되었기에 가능한 '건축학 혁명'이였습니다. 둘째, 수원화성의 모든 설계 뿐 아니라, 축성 과정의 기자재와 공사법, 각종 보고문, 일지 등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기록의 나라' 조선답게 수원화성 또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란 걸출한 저작물로 완성되었는데, 이 덕분에 한국전쟁으로 훼손된 후에도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같은 기록이 없었다면, 복원했더라도 원형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는 하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는 없었을 겁니다. 18세기에 이만한 규모의 성 설계도를 기록하고 보존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랍니다. 셋째, 남문인 팔달문(八達門)이 아니라, 북문인 장안문(長安門)이 정문?! 현재에도 팔달문(八達門)은 회전 교차로로 둘러 쌓여 있을 정도로 '수원 교통의 중심지'이나, 임금이 수원 동북쪽에서 출발해 장안문(長安門)으로 입성한다는 점 때문에 수원화성의 4개의 문중에서 '가장 큰 문이자 정문'은 장안문(長安門)이랍니다. 이는 동아시아의 궁궐 중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지요. 1975년 복원한 팔달문(八達門)은 성곽과 끊겨 도로 위의 섬처럼 외톨이 신세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보물 40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