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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2015 마크 저커버그〈책의 해〉추천 도서
현대 중국의 도약기를 다룬 독보적인 회고록
세계적인 투자 은행 골드만 삭스의 최고 경영자(1999~2006)이자 미국의 74대 재무 장관(2006~2009)을 지낸 헨리 M. 폴슨 주니어가 1992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과 상대했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이다.
폴슨은 독보적인 방식으로 중국을 상대해 온 자타공인 미국 최고의 중국통이다. 골드만 삭스 시절에는 중국 국유 기업들의 기업공개를 주도하며 중국 경제를 세계무대 위로 끌어올렸고, 재무 장관 시절에는 미중 전략경제대화(미국과 중국이 양자 현안 및 세계 이슈 등을 폭넓게 논의하는 연례회의)를 통해 미중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끌었다. 25년간 100차례 넘게 중국을 왕래하며 특유의 친화력과 탁월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장쩌민, 주룽지, 후진타오, 시진핑 등 전현직 국가주석 세 명을 비롯해 현대 중국의 엘리트들과 전례 없는 교유를 나눴다. 폴슨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핵심 질문들에 답한다.
중국은 어떻게 그토록 빨리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는가? 중국에서는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가? 중국과 협력·경쟁하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이득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폴슨은 현대 중국의 도약기를 함께한 참여자이자 목격자로서 중국식 자본주의의 탄생과 진화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새로운 경제적 위협으로 떠오른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올바른 이해와 접근법을 제시한다. 특히 경제 대국을 건설하고 있는 중국의 지도자들과 관계 맺는 방법을 다룬 아주 보기 드문 저술이다.
중국으로 간 프로메테우스
덩샤오핑 사후인 1997년, 중국 통신 사업체의 주식 상장을 논의하기 위해 주룽지(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난 폴슨은 중국의 지도자들이 대담한 실용주의자들임을 깨닫는다.
<뼛속까지 실리주의자>였던 덩샤오핑은 1978년 권력을 잡은 뒤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중국의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시장 원리를 도입했고, 이념적인 틀에서 벗어나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고안했다>. 농업을 시작으로 산업과 금융 분야로 확대하면서 경제 전반에 개인 기업을 육성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의 정수는 <중국인의 몸에 외국인의 기술을 접목>하기면 하면 중국이 다시 한번 대국으로 올라설 거라는 믿음이다. 그렇게 20년간 중국은 <대륙의 거대한 창고에서 인적 자원과 억센 근육, 두뇌를 꺼내 서방 세계로부터 구걸하거나 빌리거나 구매하거나, 도둑질한 지식과 혁신과 우수한 사례들과 결합시켰다>.
1990년대 중반, 이제 장쩌민 지도 체제에서 중국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정부 보조금으로 부채를 메우며 공룡처럼 커져 버린 국유 기업을 손볼 계획이었다. 공산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국유 기업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국제무대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매서운 개혁이 시작되었고, 외국 기업들을 끌어들인 기업공개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자 서방 세계의 기업들이 중국 국유 기업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앞 다투어 이 경쟁에 뛰어들었고, 골드만 삭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폴슨을 비롯한 서방의 은행가들이 <프로메테우스>가 되어,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들어가서 현지인들에게 자본주의 시장에 불을 붙이는 법을 경쟁적으로 전수했다>.
서방 세계에서 온 프로메테우스들이 지핀 불꽃은 주룽지가 주도한 경제 개혁과 맞물려 활활 타올랐다. 그 불길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국유 기업의 철밥통이 깨지면서 10만 개가 넘는 국유 기업이 문을 닫거나 합병되었고, 수천만 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희생 위에서 국유 기업들은 군살을 빼고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에 가입(2011년)한 뒤부터는 생산성이 폭증했고, 이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환 보유고를 갖게 되었다.
당이 지배하는 나라
중국과 거래한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을 상대로 거래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폴슨에 따르면, <중국에서 공산당은 정치와 경제와 사회생활의 처음이자 끝이다>. 공산당은 정부를 지배하고, 정부 지도자를 임명하고, 국가 운영에 관한 모든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군대, 경찰, 국가 안보 조직과 공안 조직, 지방의 감시 단체까지 관리한다. 국유 기업은 물론이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직에 당원을 배치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부 자본주의적 특징을 받아들였다곤 하지만, 여전히 레닌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8700만 명(2014년을 기준)에 육박하는 열성 당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에게 <경제적 번영은 정통성을 부여하는 원천>이었다. 일당 지배 체제라지만, 중국 공산당도 인민의 신임을 잃으면 그 지도부는 언제든 밀려날 수 있었다. 폴슨에 따르면, 공산당 지도부가 경제 성장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그들이 당의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대가로 인민들과 거래를 맺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기회와 일자리 창출, 생활수준의 끝없는 향상>이 그 거래 조건이다. 폴슨은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가장 악몽과도 같은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묻자 매년 25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던 일을 떠올린다. 시진핑 역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인 2049년까지는 <부유하고 번영한> 국가라고 중국의 목표를 밝힌 바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경제 개혁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의 핵심 사업이었고, 폴슨의 골드만 삭스는 차이나 텔레콤, 중국은행, 페트로차이나 등 중국 국유 기업들의 일련의 성공적인 기업공개를 통해 그 일의 적임자임을 증명했다.
사업의 성패는 인맥
그럼 골드만 삭스는 어떻게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과 우호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을까? 폴슨은 골드만 삭스의 대중국 사업 초기에 중국 실무자 몇몇의 승인만 믿고 일을 진행시키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임을 깨달았다. <법률이 아닌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 요직에 있는 한 명의 관료가 거래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는 사업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특히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중국 정재계 최고위 인사들과 만남을 가졌다. 고위층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보증이었다.
또한 폴슨은 정말로 중요한 고객이라면 <어렵기만 하고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부탁할 때도> 기꺼이 예스라고 말했다. 희한하게도 <광둥 엔터프라이즈 구조조정> 건처럼 전혀 사업성 없어 보였던 일들이 나중에는 더 큰 보상(돈, 기회, 인맥)으로 돌아오곤 했다. 칭화 대학교 경제관리학원의 개혁 건도 마찬가지였다. 폴슨은 주룽지로부터 칭화대(90년간 중국 엘리트의 산실이었고, 주룽지, 후진타오, 시진핑이 이 대학 출신이다)의 경제관리학원을 개혁에 힘을 보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중국 기업들은 이제 세계적인 기준에 걸맞는 전문 관리자를 필요로 했고, 중국 정부는 중국 최고의 명문 칭화대의 경제관리학원을 개혁해서 그 역할을 맡길 참이었다. 폴슨은 그 일이 금융이나 구조조정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음에도 상당한 열정을 쏟았다. 그는 <중국에 필요한 것은 마르크스 이론가가 아니라 기업을 경영할 인재>라는 판단하에 사례 연구와 실무 중심으로 경제관리학원의 MBA 프로그램을 개편했다. 또한 하버드 경영대학원과의 자매결연을 주도했고, 개혁을 주도할 강력한 자문 위원회를 준비하여 요르마 올릴라, 손정의 같은 세계적인 최고 경영자들을 다수 끌어 모아 위원으로 참여시켰다. 그 결과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은 명실상부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비록 의도하진 않았지만, 폴슨은 이 일을 통해 후진타오를 비롯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