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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궁(弓)은 단궁(檀弓)이다. 단궁(檀弓)은 조선 목궁(木弓)의 원조로 단본(檀本)(박달나무로 만든 활)으로 제작한 까닭에 단궁(檀弓)이라 하였다. 길이(長)가 약 3척(尺) 5촌(寸)이다. 단궁시대(檀弓時代)의 궁(弓)은 그 제작 방법이 유치하였던 것은 물론이다.조선 궁시(弓矢)가 해외에 진출하기는 벌써 지나(支那) 제요(帝堯) 25년에 숙신(肅愼)의 궁시(弓矢)로써 시작이 되었다. 그 뒤 주무왕(周武王) 당시에도 수출이 되었다는 것은 먼저 기술한 바와 같다. 신라에서는 원성왕(元聖王) 때부터로 즉 비류왕(沸流王)은 즉위 제 17년에 궁성동장(宮城東墻) 내에 '동사대(東射臺)'라는 사대(射臺)들 짓고 왕으로부터 조신(朝臣)과 서민까지 매월 1일과 15일에 궁술을 연습하도록 하였다. 이것을 삭망시(朔望試)라고 하였다. 그 뒤 아신왕(阿莘王) 때에 이르러서는 다시 궁성서장(宮城西墻) 내에 서사대(西射臺)를 새로 짓고 군신이 회합하여 그 삭망시(朔望試)를 힘써 장려하였다.도시(都試)는 매년 춘추(春秋) 두 계절에 거행하였는데 세조(世祖) 2년에는 130(斤)의 궁력(弓力)을 만(彎)(활을 당김)하는 자로만 시재(試才)에 응시하였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