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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앞에는 가장 힘든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오랫동안 싸우고 견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우리의 방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감히 싸우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어둡고 슬픈 인류의 범죄 역사에서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악랄한 독재에 대해 우리의 힘과 하느님이 주실 모든 역량을 다해, 바다에서도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방침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어떠한 공포를 무릅쓰더라도,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죽음만이 남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1940년 5월 총리로서의 첫 하원 연설에서 처칠 - 나도 어느덧 50이 넘었다.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이 나이에는 마음에 미혹함이 사라진다는데 점점 잃어가는 것은 용기이고 늘어가는 것은 걱정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밤늦은 귀갓길에서 저 멀리 불빛이 명멸하는 도시를 따라 이어지는 자유로를 달리다가, 나는 무심코 아주 옛날에 읽었던 윈스턴 처칠의 연설 한 구절을 떠올렸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어떠한 공포를 무릅쓰더라도,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죽음만이 남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아, 나는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에게도 처칠과 같은 그런 용기가 필요했다.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시절, 나는 혼자 운전을 할 때면 언제나 윈스턴 처칠의 연설문을 들었다. 처칠은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달변을 구사하지도 못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처럼 박력 있는 연설을 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독특한 말투와 분명치 않은 발음 때문에 그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의 연설을 들으면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처칠은 생전에 수많은 연설을 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위에서 인용한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이라는 제목의 이 연설이다. 그가 이 연설을 했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되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을 파죽지세로 굴복시킨 나치 독일이 유럽 대륙을 거의 점령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전쟁 준비에 소홀했던 영국 역시, 다른 나라들로부터 고립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파국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나는 처칠의 연설을 들으면서 "어떠한 공포를 무릅쓰더라도"라는 대목을 말하던 그의 심리적 배경에 얼마나 큰 공포심이 숨어 있었는지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 독일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영국을 압도하고 있었고, 우방이라고 믿었던 미국이나 소련은 영국을 외면하고 있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영국은 홀로 난국을 헤쳐나갈 해결책을 찾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 거의 모든 자원을 수입에 의존했던 영국에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석유나 고무와 같은 천연자원도 없었다. 게다가 식량마저 부족했기 때문에 전쟁에 돌입한다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런 영국에 히틀러가 평화와 안전을 약속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독일의 유럽 지배를 수락한다면 영국은 전쟁도, 폭격도, 식량 배급도 없이, 독일의 여러 식민국 중의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무모하게도 전쟁을 택한다면 고립된 섬나라인 영국은 전 유럽을 상대로 싸워야 했고,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빤했다. 참혹한 전쟁과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도 결국 패전할 것이 분명했다. 처칠이 총리를 맡았을 때, 영국은 여러모로 극심하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유럽 대륙은 나치 독일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섬나라인 영국은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독일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백척간두에 서 있었기에 유력한 정치인 중 누구도 총리직을 기꺼이 맡으려 하지 않을 때였다.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한 무조건적인 평화주의자와 종교인들은 무모한 전쟁은 그만두고 나치 독일과 평화롭게 살자고 주장하는 한편, 어차피 이기지 못할 싸움이므로 일찌감치 독일에 항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주영 미국 대사 등의 우방국 외교관들은 물론 영국 내각의 각료들조차도 히틀러와의 전쟁 대신 협상을 주장했을 정도로 나라 안팎의 처지는 어려웠다. 이때 처칠은 피가 끓는 20대나 30대가 아니라 65세의 노령으로, 당시의 평균수명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사회에서 은퇴해야 할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노인의 몸으로,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선택 앞에 놓여 있었다.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싸우기보다는 원만한 해결을 택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모두가 주장하듯이, 어쨌든 "평화"란 아름다운 것이니까. 그러나 처칠은 "승리하지 못하면, 죽음만이 남을 뿐"이라는 각오로 "어떠한 희생과 공포를 무릅쓰더라도" 싸우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위기의 시기에 그는 옳은 결정을 했고 그 덕분에 인류는 구원을 받았다. 이책은 개인적으로 불행했던 처칠이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책이다.몇 년 전부터 나는 책상 앞의 벽에 커다란 처칠 사진을 붙여 놓았다. 처칠이 중절모를 쓰고 정장을 입은 채 기관총을 들고 있는 사진이다. 그 모습은 왠지 1930년대 시카고 뒷골목 갱단의 두목을 연상시킨다. 나치 독일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 사진을 2차 대전 중에 영국 여기저기에 뿌려서 그를 '전쟁을 좋아하는 미치광이'의 이미지로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영국 국민들은 기관총을 든 처칠의 이미지를 좋아하여 독일의 선전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은 셈이 되었다. 내 눈에도 그 모습은 천박하거나 불량스럽지 않고, 오히려 든든해 보인다.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속의 처칠은 시가를 입에 문 채, 심술궂은 웃음을 띠며 내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