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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자극적인 이미지와 구문의 파괴 없이도, 요설체와 장광설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시 언어의 혁명적인 가능성을 조용히 밀고 나가는 이근화 시인의 세번째 시집. 시인은 일상의 세목을 선별하고 배합하는 과정에서 노련한 바리스타처럼 감각적인 기동력과 순발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선별과 배합이 만들어내는 맛과 향이 예사롭지 않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시 안에서 어우러지며, 공동체의 '어려운 문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맞닥뜨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이근화 식 화법의 특징 중 하나는 무상함이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아도 좋겠"다거나 "그래서 기분이 이런 것이군"하며 짐짓 무표정을 짓는다. 시인은 이러한 무표정에 도달하기 위해서 일단 명랑함을 가장한다. "우리는 오늘의 식사가 즐겁다"거나 "국수가 좋다/빙빙 돌려가며 먹는다"고 말하지만 이내 "실종된 유학생"과 "노동자의 마스크"와 "남편을 잃은 베트남 여인"을 불러들이고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도 한다. 시인은 이러한 낙차를 만듦으로써 시 속에서 이야기가 생성될 수 있는 높이와 질량과 속도를 충전하는 것이다. 심연에서 들끓는 정념을 엄격하게 단속하여 표면까지 끌어올리는 시인의 특기가 잘 그려진 작품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