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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질문에서 시작된 여행의 책우리가 모르는 우리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안내서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짐승이라는 것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끝끝내 여자라는 것그리핀 시문학상 수상 시인 김혜순의 아시아 여행기 『여자짐승아시아하기』가 [문지 에크리]로 출간되었다. 올해 시작(詩作) 40년을 맞이한 김혜순은 여성시인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거대 담론과 남성적 세계를 향한 비명에 가까운 시쓰기를 지속해왔다. 13권의 시집에서 '프랙털 도형'처럼 모습을 바꾸며 무한 증식하고 확장하여 스스로 움직여온 김혜순의 시적 언어는 하나의 커다란 질문에 대한 다종다양한 답변 같기도 하다. 페미니즘이 시와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일까. 김혜순의 산문 역시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산문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2002)과 시론집 『여성, 시하다』(2017)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왜 여자-짐승-아시아(하기)인가를 묻는다면, 그 기록들에서 뿌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문학적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성적 원전에 부대끼면서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서양적 담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사는 제3세계의 여성시인이다. 그럼에도 이 자리, 이 이중 삼중의 식민지 속에서 나는 여성의 언어로 여성적 존재의 참혹과 광기와 질곡과 사랑을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해야 한다"(『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는 현실 판단과 "여성시인의 언어는 여성시인 스스로가 자신을 이방인, 난민으로 경험, 인식하는 것, 혹은 그에 따른 학습, 사유가 있지 않고는 발화될 수가 없다"는 자기 인식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되었다. 『여자짐승아시아하기』는 (여성을 포함하여) 개념으로 규정되는 것들의 모든 바깥을 '하기'해보려는 시도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여행기인 동시에 시쓰기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시인의 눈은 유적보다는 골목과 거리를 빼곡히 채우는 사람들에 닿아 있다. 시인이 천착해온 바리데기 설화나, 사이와 변두리의 존재들에 주목하고 이입하여 문법적인 경계를 허물어버리려는 시도들은 김혜순의 시적 여정이 어떤 식으로 이어져왔는지에 대한 힌트로 읽히기도 한다. 머리말에서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다뤄질지 간략하게 조명한다. 시인이 티베트에서 설인 예티에 대한 벽화를 보고 영감을 얻은 「눈의 여자」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 찾으려고 해도 찾아지지 않는 것, 국민적 욕망의 잠재의식을 읽어보려 노력했던 흔적이다. 또한 「쥐」에서는 인도의 쥐 사원에서 발견한 인간과 쥐의 친밀함, 인간과 짐승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살펴보면서 나와 짐승의 간격을 흐릿하게 만들어 "언어적 담론과 권력에 의해 구성된 인간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새로운 생기의 장에 도착하고자 했다. 38편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붉음」은 중국 소수 민족 마을과 몽골, 사막 등에 대한 붉고 뜨거운 기록이다. 이 글들은 또한 '대문자 국가' '대문자 인간'을 벗어나 오히려 '스스로 비천하기'를 감행하는 어떤 이상한 움직임의 발견이기도 하다. 2007년경 『문예중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다듬고 더했다. 10년 남짓 지났지만 쉬 바뀌는 '정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추는 글이기 때문에 언제 읽어도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