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나막신

ebook

By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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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역사의 한 장면에서 당겨지는 순수와 비순수의 길항을 통한 시적 긴장들 시, 쉽게 닿을 듯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와의 대결 (이상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인 송찬호의 다섯번째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479번째 시집으로 송찬호의 다섯번째 시집 『분홍 나막신』이 출간되었다. 문명의 위력에 동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2009) 이후 7년 만의 결실이다.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989)와 두번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4)에서처럼 인습적이고 상투적인 형식에 맞서 대상을 불화와 충돌로써 새로운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시인만의 새로운 상징과 미적 질서가 이끄는 가운데 세번째 시집 『붉은 눈, 동백』(2000)의 선명한 이미지가 세계와 만나 이뤄내는 존재에 대한 성찰은 좀더 깊어졌다. “내가 다스리는 나라에서/어찌 이런 맹랑한 게 태어날 수 있지?/복숭아나무가 미쳤군!”이라는 엄포 속에서도 “그래, 난 미친 복숭아 나무에서/태어난 털 없는 짐승 [……] 거친 이야기 한 토막 뗏목 삼아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다”(「복숭아」)고 으스대는 붉은 분홍의 몸집이 강렬하게 서로 다른 시들을 견인한다. “검은 밤 가족 드라마가 뜨겁게 타오른다/활활 타오르는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아동이 탄생하고/새로운 가족이 발명”(「불의 가족」)되는 그야말로 “시뻘건 화염 속에서” 사는 가족은 누구인가. 이 달뜬 분홍의 몸들은 시집 전체에 걸쳐 봄-여름-가을-겨울을 아우르며 세밀한 풍경들 속에 등장한다. “오너라, 더딘 봄이여/여기는/아시아의 맨 끝/서정의 박토”(「2월의 노래」), “언덕에는 지난여름 지독한 피부병을 앓은/버짐나무 몇 그루 서 있었고/[……]/따라서 다치고 지친 그들 몸이 쉬어가기에/언덕은 이미 지나치게 통속해져 있”(「붉은 돼지들」)으며, “냇가에 살얼음이 하얗게 떠 있던 늦가을 아침”(「화북(化北)을 지나며」)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다가온 “어느 해 겨울 선거에 패하고 흰 붕대를 하고 다닌 사람들 모습”(「눈사람」)은 누구의 모습인가. 시인이 여기 시들에 그려놓은 모습은 누구도 아닌 ‘나’의 모습이 되어 아프게 공감을 일으킨다.

분홍 나막신